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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력 재건의 머나먼 길 필리핀 글_조문곤 항공전문 기자



  중앙아시아의 영구중립국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운수가 나쁜 사람은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옛 속담이다. 필리핀 항공력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속담 하나로 정리가 끝난다. 항공력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정치·경제와 궤를 같이 하게 되는데, 필리핀의 현대사가 갖가지 불운과 좌절을 반복하는 형태로 전개되면서 항공력 또한 성장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필리핀 경제를 일으켜 항공력이 강화될만하면 지도자가 갑자기 죽거나, 독재자가 나타나 나라를 망치거나, 재앙적인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올해 말부터 FA-50PH가 순차적으로 도입될 예정이지만 FA-50PH 도입 전까지 현재 필리핀이 보유한 기체들 중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량의 로켓포 몇 발을 겨우 탑재할 수 있는 10대 내외의 OV-10 전선통제기 뿐이다. 무려 9,500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의 항공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 미국의 경제원조와 각종 개혁정책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면서 한때 우리나라에게 경제원조를 해주던 필리핀과 필리핀의 항공력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990년대 초부터 중고로 도입된 OV-10은 올 연말 FA-50PH 도입 전까지 필리핀 공군을 지키는 유일한 고정익 전투전력이다. 


  너무도 짧았던 항공력 르네상스


1947년 7월 창설된 필리핀 공군은 창설 초기 10년간 대한민국 공군과 비슷한 전력으로 출발했다. 이 시기는 필리핀 항공력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국방장관 출신의 ‘라몬 막사이사이’가 1953년 대통령에 오르면서 각종 개혁암흑기정책과 부정부패 척결을 통해 정치는 물론 군사, 경제까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당시 필리핀은 6·25 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우리나라에게 결코 적지 않은 경제원조를 해줄 정도였다. 


국방장관 출신답게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군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50년대까지 F-51 머스탱을 주력 전투기로 운용하던 필리핀 공군은 1957년 F-86 50대와 F-86D 20대를 도입해 F-51을 대체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제트기 시대에 진입했다. 


1960년에는 아프리카 콩고에 UN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되어 첫 실전을 치를 정도였으니, 오늘날 필리핀의 항공력을 고려하면 당시 필리핀 공군은 그야말로 르네상스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재직 4년만인 1957년 막사이사이는 지역순방 후 마닐라로 돌아오던 중 전용기가 추락하면서 그의 주요 측근들과 함께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만다. 


나라를 훌륭히 이끌어 오던 지도자의 죽음에 필리핀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것이 진짜 비극의 시작에 불과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마르코스의 독재와 공군력의 암흑기


막사이사이 대통령 서거 이후 1965년 정권을 잡은 마르코스의 등장은 21년간의 지독한 독재와 극악무도한 부정부패 정권 출범의 서막이었다. 그동안 필리핀은 급격하게 붕괴된 경제, 이슬람 분리주의자 및 후크발라합 무장세력 창궐 등으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마르코스 독재정권 동안 필리핀 공군의 시계는 F-86 도입을 통해 제트기 시대로 진입했던 1950년대 말에서 멈춰버렸다. 


그 사이 아시아 각국은 1970~1980년대를 거치며 눈부신 항공기술 발달과 함께 첨단화된 공군으로 일신해간 반면, 필리핀 공군은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함께 철저히 망가져 갔다. 마르코스 정권은 실로 ‘필리핀의 잃어버린 20년’이었다. 


마르코스 정권에서 보강된 전력이라고는 1965년부터 미국으로부터 공여 받은 23대의 F-5A/B뿐이었다. 이밖에 1978년 25대의 미 해군의 중고 F-8H 크루세이더 전투기를 들여오긴 했지만 기체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도입예산으로 지불한 3,500만 달러는 사실상 바가지였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필리핀에게 3,500만 달러는 대단히 큰돈이었고 더욱이 F-8H는 당시 필리핀 공군의 기술적 수준 및 인프라, 예산규모로는 운용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유지비가 많이 드는 전투기였다. 결국 운용비와 부품수급 등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도입한지 불과 10년 만인 1988년 일선에서 도태되어 버렸다.


※ 출처: Flight global World Air Force Date Base 2015


  번번이 발목 잡힌 공군 현대화


필리핀의 국력을 갉아먹던 마르코스가 부정선거로 인해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1986년자진사퇴하면서 필리핀은 오랜 독재 뒤 갑작스런 권력공백으로 또 다시 수차례의 쿠데타와 내전 등을 겪으며 정권 안정화에 몸부림쳤다. 


정권찬탈과 이에 대항하는 무장세력들과의 내전으로 인해 필리핀 공군은 지상군의 게릴라전에 대한 항공지원에 중점을 둔 항공력을 구성해야 했다. 필연적으로 간소화된 형태를 바탕으로 지상군 지원에 적합한 기동헬기와 1991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중고로 도입한 24대의 저속 대지공격기 OV-10이 주력이 되었다. 때문에 공중전이나 본격 공대지임무를 수행할 플랫폼 획득은 예산순위에서 멀어져 제대로 현대화된 공군의 모습을 갖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1992년부터 정권을 잡은 국방장관 출신의 라모스 대통령이 1995년 2월 대통령령으로 ‘군현대화 법안’을 추진하면서 필리핀 공군의 현대화가 범정부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착수 됐다. 


공군력 현대화에서 가장 시급했던 것은 전투기의 확충이었다. 먼저 당장 수량이 부족한 기존 F-5A 전력을 확충하기 위해 1996년부터 대한 민국, 대만, 요르단으로부터 중고 F-5를 속속 인수했다. 이와 함께 F-5를 대체하기 위해 24대 규모로 신형기 도입을 추진하는데 후보 기종으로는 F/A-18C/D, 그리펜, 미라지 2000-5, 크 피르 2000, F-16C/D 등이 물망에 올랐다. 


필리핀은 후보 기종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마침 내 1996년 말 AIM-120 암람 미사일 운용이 가능했던 F/A-18C/D를 선정했다. 오랜 암흑기를 힘겹게 지나온 뒤 필리핀 공군이 현대화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중대한 이정표였다. 


그런데 1997년 IMF사태가 터졌다.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것이다. 신형전투기 도입사업은 백지화됐고, 한 줄기 희망을 목전에 두고 있던 필리핀 공군은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갑자기 필리핀을 덮친 금융위기는 신형전투기 도입의 백지화는 물론이고 기존 전력의 붕괴로 이어졌다. 공군예산의 급감으로 인해 기존 장비들의 현대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실력 있는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이 민간 항공사로 유출되는 현상이 극심해졌다. 때문에 그나마 남아있는 기체를 제대로 정비하고 유지하지 못해 기종을 불문하고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추락사고도 빈번해졌다. 특히나 유일한 전투전력이었던 F-5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1965년 미국으로부터 공여 받은 이래 세계 각국으로부터 중고기로 도입한 기체를 포함해 최대 37대까지 유지했었지만, 2000년대 들어 제대로 작전할 수 있는 기체 수는 불과 4대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운용비를 감당못해 2005년 결국 마지막 F-5A가 퇴역하면서 필리핀 공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IMF 사태로 F-5를 대체하기 위한 F/A-18 도입이 좌절되면서, F-5가 2005년 전량 퇴역하자 필리핀은 영공을 지킬 전투기 하나 존재하지 않는 치명적인 항공력 공백으로 이어졌다. 


  항공력 건설의 머나먼 길


필리핀은 3개의 항공사단과 그 예하에 2~3개 씩의 비행단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북부, 중부, 남부지역을 방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재난 때문에 공군은 주로 탐색구조, 구호 및 수송임무 등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평시 주된 훈련은 민간단체와 합동으로 실시하는 긴급 재난구호훈련으로 채워지고 있다. 사실상 공군이라기보다는 재난대책군과 같은 모양새다. 


더욱이 7,107개의 섬, 세계 해안선의 10.7%를 점유하고 있는 필리핀의 해양경계 소요는 그야 말로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군도로 이루어진 나라인 만큼 헬기와 수송기는 아무리 많이 보유 해도 부족할 지경일진대, 현재 필리핀 해군항공대 전력이나 수송기전력은 도무지 답이 없는 수 준이다. 


더욱이 필리핀은 남중국해의 스카보러 섬(중국명 황옌다오)과 스프래틀리 군도의 일부 섬에 대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 분쟁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허공 속에 외침일 뿐 이다. 중국의 강력한 군사력 확장으로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변변한 전투기 하나 없는 필리핀으로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주변국들과의 외교적 공조를 통해 도움을 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필리핀 해군은 2013~2014년 5대의 AW109 해상 작전헬기 도입을 결정해 올해 초까지 인수를 마쳤지만 성능을 고려할 때 상징적인 수준의 전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 FA-50PH 1호기는 2015년 6월 19일 첫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올해 말 2대가 인도되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12대가 필리핀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이러한 축면에서 필리핀의 FA-50PH 도입결정은 대단히 과감하고 통 큰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의 FA-50 도입계획은 2011년 6월 필리핀 공군 창설 64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볼테르 가즈민 국방장관이 경공격기급 전술입문기 도입을 천명하면서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FA-50 도입계획이 추진된 이래 대규모 자연재해 및 경제난으로 과연 도입이 성사될 수 있을 까 많은 의구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12대의 FA-50PH 도입을 끝내 이뤄낸 필리핀에게 FA-50PH는 단순한 전투기 도입이 아닌 필리핀 항공력 재건을 위한 강한 의지를 상징하는 기종이라 할 수 있다.



  필리핀, 동양의 진주, 아름다운 섬들의 향연



정식 국가 명칭은 필리핀 공화국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휴양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필리핀은 오랫동안 스페인(1571~1898)과 미국(1898~1942), 일본(1942~1945) 등 외세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식민통치 하에서 1946년 7월 4일 정식으로 독립을 맞았다. 


국토는 7,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섬은 이름 없는 암초이거나 산호초이고, 사람이 정착하고 있는 섬은 880개 정도이다. 그 가운데 루손섬과 민다나오섬이 가장 커서 국토 총 면적의 65%를 차지한다. 


그 밖의 주요 섬으로는 양대 섬 사이에 있는 비사얀 제도의 7개 섬(사마르, 파나이, 레이테, 세부, 보홀, 마스바테, 네그 로스) 및 민도로, 팔라완이 있다. 


지형은 필리핀의 최고봉인 아포산(2,954m)을 비롯하여 마욘, 탈 등 여러 개의 화산을 가진 산지와 미국의 2배가 넘는 복잡한 해안선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환태평양 화산대와 환태평양 지진대가 지나고 있기 때문에 화산이 많고 지진이 잦다. 


또 해안 지대에는 곳곳에 산호초가 발달해 있고, 태평양의 필리핀 해구(海溝)에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연(海淵)의 하나인 케이프존슨과 엠덴 해연이 있다. 


  필리핀 중심지 ‘마닐라’ 


루손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필리핀에서 가장 발전된 곳이다. 7,000여 개 섬들을 아우르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중심지로 각각 고유의 지방색을 경험할 수 있으며, 다채로운 문화도 엿볼 수 있다. 특히 마닐라는 필리핀 제도 각지의 수출용 농작물인 코코넛·마닐라삼·사탕수수·잎담배 등을 모아 정제·가공한 뒤 수출하는 가공업이 발달해 있어 최근 동부 교외에 새로운 공업 지대가 건설되고 있다. 


대표적인 여행지로는 따가이따이, 팍상한 폭포, 히든밸리, 마따붕가이 등이 있다. 


  꿈의 휴양지 ‘세부’ 


스페인의 첫 거주 지역이었던 세부는 다양한 문화와 혼합적 역사, 과거와 현대 문화가 공존해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과 명소를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부는 필리핀 남부 통상무역의 중심지이며, 국제화물 항구는 메트로 마닐라를 제외하면 가장 활발한 상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막탄과 반타얀, 카모데스 섬 외 16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에메랄드와 비취색이 섞인 환상의 바다 빛이 동화 속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다.


  보라카이 최고의 해변 ‘화이트 비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름다운 보라카이는 비사야 제도의 작은 섬으로 깨끗한 해변과 열대 야자나무, 다양한 해양스포츠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세계 3대 해변으로 불리는 화이트비치는 밀가루처럼 새하얀 산호모래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3~4km의 부드러운 백사장이 직선으로 쭉 뻗어있으며, 대표적인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는 만큼 호텔, 리조트, 레스토랑은 물론 야간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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