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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곤의 영화가 말하는 항공기 <미 해군기> 편


필자: 조문곤 항공전문기자


‘영화 속 항공기’라고 하면 다소 진부한 주제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항공기는 매우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스크린을 채워 왔다. 영화에 등장하는 항공기는 영화의 스케일을 한껏 키워 관객들로 하여금 ‘블록버스터’라 인식시키는 매우 효과적인 영화 소품이다.

항공기가 등장하는 영화는 물론 항공 팬들의 이목을 끌지만 고집스런 고증을 거쳐 명작으로 평가받는 영화가 나오기도 하고, SF나 판타지물이 생각날 정도로 고증을 무시해 망작으로 추락한 영화도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영화 속 항공기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몇 차례 연재로 펼치고자 한다. 단, 포스팅 주제를 감안해 영화의 작품성이나 스토리에 대한 비판(예를 들어 미국 만만세!를 외치는 전형적인 팍스아메리카나 영화)은 제쳐두고 항공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첫 번째 주제는 <미 해군기> 편이다.

미 해군기는 헐리웃 영화의 단골이다. 항공영화 중 항공기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미 해군기들이 등장하는 영화일 것이다. 항공모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서 복잡하게 뜨고 내리는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최후의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 1980)




미 해군기 팬이라면 <탑건>보다 더 애잔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바로 최후의 카운트다운이다.
영화는 항해 중이던 CVN-68 USS 니미츠 항공모함이 이상한 타임루프 홀을 만나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함대가 진주만을 공격하기 하루 전날인 1941년 12월 6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니미츠호의 함장은 고심 끝에 일본 함대와 전투기들을 공격해 역사를 바꾸기로 결정하고 항모 비행단이 모두 출격하도록 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타임루프 홀은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임박한 순간에 바뀌고, 진주만 공습의 역사는 바꾸지 못한다는 스토리다. 한 마디로 ‘진주만 공습 전 현대 항모 한 척만 있었어도 일본 함대를 쳐부숴버렸을 텐데’라는 상상으로 시작해 상상으로 끝나는 영화.





영화 출현의 가장 많은 지분은 F-14 톰캣이 가져갔지만, A-6 인트루더, A-7 콜세어II, EA-6B 프라울러, RF-8 크루세이더, E-2 호크아이, S-3 바이킹 등 미 해군 전성기 시절 기체들이 빠짐없이 출연한다. 게다가 미 해군기 도색이 칙칙해지던 로우비지 도색이 실시되기 전이라 형형색색 화려한 도색들을 입고 나와 밀덕의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다.




 

특히 영화 초반에 KA-6D로부터 급유를 받는 F-14의 모습과, A-7 콜세어II의 테일 후크가 고장이나 바리케이드를 세워 착함시키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여주지 않은 희귀한 장면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진주만을 향해 오는 일본 해군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모든 기체가 완전 무장을 하고 대거 발함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과거로 돌아간 직후 초계비행에 나선 2대의 F-14가 A6M 제로 전투기와 공중전(이라 쓰고 일방적인 압살이라 부른다) 장면이다. F-14와 A6M 간 비행속도 격차가 매우 크지만 F-14는 가변익을 폈다 접었다 하며 그야말로 현란한 기동을 보여준다. 






그렇게 A6M을 가지고 놀다가 함장으로부터 격추명령을 받고 1대는 20mm 기관포로, 1대는 AIM-9 사이드와인더로 제로 전투기를 격추시킨다.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니미츠 호와 니미츠 호와 항해했던 항모항공단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지휘통제실, 간부 및 병사 식당, 격납고, 비행대장실, 무장 엘리베이터 등 각종 내외부 설비 등은 실제 그대로다. 영화의 스토리며 작품성을 완전히 배제하고서라도 항공 팬들에게는 소장가치 만랩의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탑건(Top Gun, 1986)




말이 필요 없는 영화다. 흥행, 스토리, OST, (나름 충실한) 고증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항공영화의 ‘원 탑’같은 존재다. 너무 잘 알려져 있어 본 포스팅에서 다루는 것 자체를 고민했을 정도.




▲명곡 OST "Danger Zone"이 흐르며 어둠속에 나타난 F-14가 발함하는 오프닝 신은 영화 탑건의 최고의 장면 중 하나다. 


영화는 해군 전투병기학교(Navy Fighter Weapons School)에 입교한 조종사들의 열정과 경쟁,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제목인 ‘탑건’은 전투병기학교의 별칭에서 따온 것으로, 베트남 항공전에서 미사일 기술을 맹신했다가 처절한 쓴맛을 본 미 해군이 실패를 교훈삼아 1969년에 설립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탑건의 설립은 대성공이었다. 1967년까지 베트남 공군기들과의 격추비율이 3.7:1에 그쳤던 것과 달리 탑건 출신들의 조종사들이 베트남 항공전에 본격 투입되고 나서는 격추비율이 13:1까지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실전에서 성적이 뒷받침되자 해군에서의 탑건의 위상은 매우 높아졌다.





탑건에 입교한 학생조종사들이 타는 항공기로는 F-14 톰캣만 나온다. 그러나 실제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1980년대에는 F/A-18 호넷 역시 학생조종사용으로 운용하는 주력 기종 중 하나였다. 영화의 대성공으로 ‘탑건=톰캣’의 등식이 너무 굳어져서인지 탑건에서 F/A-18의 존재감은 대중들에게 상당히 미미한 편. 가상적기로는 A-4 스카이호크가 주로 출연한다. 영화 속에서 MiG-28로 묘사된 적기는 사실 F-5에 소련 공군기를 설정한 도색을 입힌 것이다. 실제로 F-5 역시 당시 탑건에서 A-4와 함께 주력 가상적기로 운용됐다. 이들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이르러 가상적기로서의 역할을 F-16과 F/A-18에게 내어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영화의 주인공인 F-14는 준수한 외모 덕택에 인기를 얻기에 충분했지만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단숨에 글로벌 인기 기종으로 올라섰다. 당시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CG ‘덕분에’ 실사로 촬영하여 스크린을 채운 F-14의 현란한 기동과 미사일 발사 장면은 압권이다. 영화 탑건은 당시 ‘강한 미국’을 부르짖던 레이건 행정부의 기조와 맞아떨어져 미 국방성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촬영됐다. 모함으로 등장하는 항모는 CVN-65 USS 엔터프라이즈였고, 영화에 등장하는 F-14는 VF-51 Screaming Eagles, VF-111 Sundowners, VF-114 Aardvarks, VF-213 Black Lions 등 여러 비행대로부터 조금씩 차출하여 촬영했다. 이런 탓에 장면마다 F-14의 비행대 마크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옥에 티가 있다.



▲ 촬영을 위해 각 비행대에서 차출된 F-14와 적기 역할을 맡은 탑건 소속 가상적기 F-5가 편대비행을 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영화촬영 시점이 냉전이 한창인 1980년대였고, 그 가운데 최일선 주력전투기를 영화를 위해 차출해야 한다는 배경을 생각하면 이정도의 옥에 티는 무조건 눈감고 넘어가줘야 한다. 주인공 매버릭(탐 크루즈 분)의 F-14가 훈련 중 엔진이 꺼지는 플레임 아웃현상으로 추락하고 탈출과정에서 그의 동료가 죽게 되는데, 이 F-14의 추락장면도 실제 F-14A 초기형에서 자주 일어났던 고질병을 반영하였다.

이처럼 탑건은 곳곳에 옥에 티가 없지는 않지만 영화 전반에 고증에도 나름 충실해 항공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개봉한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최후의 출격(Flight of Intruder, 1991)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전 영화다. 주인공이 F-14 톰캣처럼 잘생긴 비행기가 아닌 못생기고 억울하게 생겼다는 A-6 인트루더이기 때문일까? 
영화는 1972년 베트남전에 참전한 A-6 조종사들의 임무와 애환을 그린 영화다.
A-6 인트루더는 1963년 실전배치 이래 퇴역한 1997년까지 미 해군의 주력 공격기로 활약했다. 활약기간도 길고 함재기로서 무장탑재량이 발군이었기 때문에 냉전기간 미국이 개입했던 항공전에 거의 빠짐없이 참전했다. 역시나 주력 무대는 베트남전이었다.




▲ 영화 초반 2대의 A-6 인트루더가 신나는 피아노 음악과 함께 화려한 기동을 보여주는 영상은 백미다. A-6이 그저 느리고 못생긴 비행기가 아님을 영화는 잘 보여준다.




화려한 전투조종사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아니다 보니 흥행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영화는 시종일관 영화 고유의 재미나 스펙타클함보다는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비행 및 폭탄 투하 절차에 따라 레이더 스크린이나 계기판을 보여준다든지, 당시 신뢰성에 문제가 많았던 전자장비들이 임무수행 중 고장이 난다든지, 당시 A-6이 구사했던 폭격전술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한다.





당시 A-6 조종사들의 애환도 영화 속에 잘 녹여내고 있다. A-6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저공비행을 해야 했는데, 그만큼 적 대공포와 대공미사일에 쉽게 노출되어 베트남전에서 손실이 매우 컸다. 영화에서도 대공포에 적지 않은 A-6이 희생됐다.





덧붙여 A-6의 아킬레스건이라면, 방어무기가 전혀 없는 공격기라는 점. 즉, 전투기와 조우하면 도망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영화에서도 미그기와 조우한 A-6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하루에 몇 명씩 동료 조종사가 전사하고 신참들이 와서 빈자리를 메우는 일이 반복되자, 새로운 조종사들이 전입을 와서 인사를 건네도 다들 무표정한 모습에서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기 어려운 당시 A-6 조종사들의 애환도 잘 드러나 있다.





참고로 영화 막판에 추락한 A-6 조종사들을 잡기 위해 베트콩들을 소탕하기 위해 지원기가 날아오는데 다름 아닌 피스톤 엔진을 장착한 A-1 스카이레이더다. A-1은 소이탄을 여기저기에 떨어뜨려 베트콩들을 불태우며 탐색구조헬기가 A-6 조종사들을 무사히 구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제트기들이 판을 친 베트남전이었지만 A-1은 엄청난 내구성과 탑재량으로 베트남전에서 크게 활약했다. 프로펠러기이면서도 베트남전에서 MiG-17 2대를 기관포로 격추시킨 전과를 올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이름에서 보듯 미 해군 공격기 계보의 원조격으로 각종 파생형이 개발되며 오랫동안 활약하다가 1979년에 퇴역했다.




 

에너미 라인스(Behind Enemy Lines, 2002)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5년 미 공군 F-16 조종사 스콧 오그래디 대위가 추락했다가 구조된 실화를 각색한 이야기다. 실화와는 달리 영화는 CVN-70 USS 칼빈슨 항모에 전개하는 미 해군 F/A-18F 슈퍼 호넷 조종사의 생환과 구조를 다뤘다. 





이 영화는 당시 미 해군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F/A-18F 슈퍼 호넷이 처음 영화에 등장해 항공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 자체가 적진에 떨어진 조종사가 생환하는 구출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슈퍼 호넷의 추락 이후에는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 결국 항공 팬들의 관심은 슈퍼 호넷이 대공 미사일에 쫓겨 다니다가 추락하는 순간까지인데, 2002년 개봉작인 만큼 CG가 어우러져 대단히 멋진 영상을 뽑아냈다. 슈퍼 호넷의 현란한 미사일 회피기동은 마치 보잉의 슈퍼 호넷 프로모션 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또 하나, 이젝션 시트가 사출되는 순간의 시퀀스를 디테일하게 묘사한 것은 영화의 백미다. 전적으로 CG의 힘이며, 탑건 시절에 이 정도의 CG가 있었다면 구스가 캐노피에 충격하는 바람에 죽게 된다는 다소 어이없는 설정은 없었을 수도..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오프닝 신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신은 주인공과 동료가 함께 탄 슈퍼 호넷이 칼 빈슨 호에서 발함하는 장면이다. 어라? 자칫하면 욕먹기 딱 좋은 오프닝 신이다. 바로 <탑건>이다. 즉 자칫하면 <탑건>의 아류처럼 보일 수 있는 오프닝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탑건>과의 차별화를 꾀한 것이 눈에 띈다. <탑건>은 동터오는 새벽녘 잔잔한 음악과 발함준비를 하다가 발함과 함께 신난 음악을 틀어줬다면, 에너미 라인스는 시종일관 빠른 템포의 음악과 장면이 뚝뚝 끊어지는 역동적인 편집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심지어 발함 직전 나토 헬기가 접근한다며 임무가 취소되며 조종사들은 슈퍼 호넷에서 내려온다.





이런 부류의 영화가 당연히 신경 따위 쓰지 않을 고증 부분을 하나 지적하자면 주인공 버넷 대위의 슈퍼 호넷은 VFA-163 Saints 소속기로 나온다. 그러나 VFA-163은 1960년 창설되어 1971년에 해체된 비교적 단명한 비행대로 이후에도 재창설되지 않았다. 즉, 가상의 비행대 설정인 셈. VFA-163은 A-4 스카이호크를 장비하고 베트남전에 투입되었지만 비교적 많은 수의 전투손실을 입었고, 1966년 CV-43 USS 오리스카니 화재 사건에서도 인명피해를 입은 비운의 비행대다. 영화상에서도 임무 중 격추되는 설정이므로 현존하는 비행대 소속기로 나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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