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블로그

인간이 하늘에서도 싸우기 시작했다


필자 : 남도현 국방전문 칼럼니스트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가 12초 동안 36.5m를 날았다. 키티호크 해안가에서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저 새로운 구경거리가 등장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1976년 호기심 많은 몇몇 청년들이 집안 차고에서 만든 장난감 같은 애플이 모두가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를 연 초석이 된 것처럼, 플라이어 1호의 비행은 인류사를 바꾼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역사적인 플라이어 1호의 비행 모습. 인류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 순간이다 (출처:위키피디아)>


오늘날의 비행기는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이동 시 애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15세기에 콜럼버스는 대서양 횡단에 석 달이 걸렸지만 이제는 같은 거리를 6~7시간이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인류는 비행기로 많은 혜택을 누리지만 반대급부로 특정 지역에서만 발병하거나 외부로 퍼지는데 수십 년 이상 걸리기도 했던 질병이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유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초로 동력 비행체가 비행에 성공했을 때는 과연 이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아무도 몰랐다. 성공에 감격한 라이트 형제가 1년 후에 신문 기자들을 대거 초청해서 새로 제작한 플라이어 2호로 시범 비행에 나섰지만 실패했을 정도로 실제로 비행기로 사용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을 정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용할 수 없는 기술은 결국 사장 될 수밖에 없다.




<1794년 플로레스 전투에 등장한 정찰 기구를 묘사한 그림. 최초로 비행체를 전쟁에 사용한 사례다 (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대단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 본 이들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의 날개’에 관한 이야기처럼 인간은 하늘을 자유롭게 이동 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 우선 가장 큰 이점은 3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땅위나 바다 위로 갈 때보다 제약을 덜 받게 된다는 점이었다.

다음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교통, 통신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단지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 보고 판단을 내려야 했다. 높은 곳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욕심 많은 인간들은 이런 효과를 따질 때 어김없이 군사적 효용성도 함께 생각했다. 이미 1794년에 벌어진 플로레스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열기구를 정찰용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1907년 탄생한 미 육군 통신대 항공사단 소속 비행기와 기구 (출처:위키피디아)>



플라이어 1호의 성공이 있은 지 불과 4년 후인 1907년에 미 육군 통신대(Signal Corps)는 연락과 정찰 임무를 위해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 등을 기반으로 오늘날 미 공군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항공사단(Aeronautical Division)을 창설했다. 이처럼 비행기를 군사용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등장과 동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대부분의 열강들은 항공대를 운용했다.

이미 지상의 목표물을 폭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는 있었지만 성능이 부족해 이때까지는 아직 전투용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찰이나 연락 임무 도중에 적기와 마주쳤을 때 멀뚱멀뚱 상대를 바라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주먹감자를 날리는 것 이외에 하늘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늘에서의 싸움을 포기할 만큼 결코 인간은 착한 존재가 아니었다.




<최초로 공중전을 벌인 세르비아군의 미오드락 토미치(조종석) (출처:위키피디아)>



8월 15일, 비행에 나선 세르비아군의 토미치(Miodrag Tomić)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정찰기와 마주쳤다. 가까이 다가온 상대가 갑자기 권총으로 사격을 가해오자 토미치도 권총으로 응사하며 현장을 이탈했다. 인류 최초의 공중전은 이처럼 싱겁게 막을 내렸지만 이는 전쟁사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도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자 이제 모든 교전국들은 앞 다투어 비행기를 무장시키기 시작했다.

10월 5일, 프랑스군의 브와송 정찰기가 작전 도중 독일군의 아비아틱 정찰기와 조우했다. 이 둘은 즉각 선회에 들어가 총격을 개시했는데, 기관총을 탑재해 화력이 앞선 브와송은 소총으로 응사한 아비아틱을 격추시키는데 성공했다. 프랑스의 프란츠(Joseph Frantz)와 퀴놀(Louis Quenault)은 최초의 승자로, 독일의 잔겐(Fritz von Zangen)과 슐리슈팅(Wilhelm Schlichting)의 최초의 공중전 전사자로 기록되었다.




<공중전 최초의 승자인 조종사 조셉 프란츠(좌)와 후방 사수 루이 퀴놀 (출처:위키피디아)>



이듬해가 되자 전투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투기가 속속 등장하면서 치열한 공중전은 일상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된 것을 보면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복리를 증진해주는 분명한 요소다. 그러나 살상과 파괴의 도구인 무기처럼 굳이 발달할 필요가 없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비행기가 탄생한지 불과 10년 만에 이루어진 공중전은 의미 있는 기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