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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회의 명칭


필자 : 남도현 국방전문 칼럼니스트



원래 카드 게임의 용어인 그랜드슬램이 스포츠에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했다는 의미로 처음 쓰인 것은 1930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테니스와 골프가 서로 먼저라고 주장할 정도로 당시 매체에서 거의 동시에 이 용어가 거론되었다. 최근에 와서 많은 여타 종목들이 몇 개 대회를 엮어 그랜드슬램 운운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테니스와 골프만큼 대중이나 언론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한다.




<우리나라 유일의 그랜드슬래머인 박인비 선수가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제패한 순간 (사진출처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원칙적으로는 같은 해에 석권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러 시즌에 걸쳐서 달성해도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고 찬양할 만큼 상당히 이루기 어려운 과업이다. 여자 골프 역사상 7번째로 대업을 이룬 박인비 선수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여기에 더해 올림픽까지 제패한 최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여제라고 칭해도 결코 과분하지 않다.


테니스의 그랜드슬램은 4대 메이저 대회인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호주 오픈을 모두 제패하는 것이다. 이들 대회는 경기장 개축처럼 특이한 경우가 없으면 매년 같은 곳에서 개최되는 것이 원칙이어서 경기장들의 유명세도 상당하다. 특히 영국 오픈과 프랑스 오픈은 공식 대회 명칭이 경기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래서 대회 기간이 아니어도 평소 많은 관광객들이 경기장을 방문한다.




<롤랑 가로스의 센터 코트.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의 정식 명칭은 롤랑 가로스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매년 5월 말~6월 초에 열리는 프랑스 오픈의 공식 명칭은 롤랑 가로스(Les Internationaux de France de Roland Garros)다. 1891년 프랑스 선수권으로 시작된 대회명이 이렇게 바뀐 것은 1927년 새로운 경기장이 건립된 이후부터다. 당시 건설을 주도했던 에밀 르지에 프랑스 테니스 협회장이 10년 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친구인 롤랑 가로스를 기려 경기장을 명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가로스가 취미로 즐겼는지는 모르지만 경기장의 이름과 이후 대회 명칭으로도 쓰일 만큼 테니스와 관련이 있는 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언 듯 이해되지 않는 이름이 명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전쟁 영웅이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에서는 공공건물 등에 전쟁 영웅을 기려 이름을 붙이는 사례가 흔하다. 한마디로 암묵적인 사회적 동의가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의 전쟁 영웅인 롤랑 가로스. 최초로 공중전 에이스의 칭호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가로스는 항공기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항공기 역사의 개화기인 1910년부터 비행기를 탔고 1913년에 최초로 지중해 횡단에 성공했을 만큼 시대를 선도한 인물이다. 거기에다가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곧바로 자원해서 전선으로 달려갔을 만큼 애국심도 대단했다. 당시에 전투기가 없었으나 사악한 인간들은 권총을 들고서라도 총격을 가했을 정도로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즉각 싸움의 도구로 만들었다. 


이처럼 어차피 하늘에서의 전투를 피할 수 없게 된 이상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겨야 했다. 기체 전방에 기관총을 장착해서 비행 방향으로 공격을 가하면 좋지만 프로펠러에 손상을 주어 처음에는 조수석에서 후방이나 측면으로 총격하는 방식으로 교전을 벌였다. 이를 피해 기관총을 날개에 장착하기에는 당시 비행기의 내구성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전투를 보다 잘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연구되었다.




<롤랑 가로스가 타고 신화를 만든 모랑솔니에 L형 전투기. 전방 사격이 가능하도록 프로펠러에 강철판을 덧대었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가로스는 프로펠러가 회전할 때 빈 공간을 노려 사격이 가능한 방법을 생각했다. 이런 구상은 이후 싱크로나이즈 기어로 실현되지만 전선의 상황이 너무 급했다. 그는 모랑 솔니에 항공기 제작사의 도움을 받아 프로펠러 날에 강철판을 덧대어 총탄이 명중하더라도 밖으로 튕겨나가는 대안을 고안했다. 마침내 1915년 4월 1월, 그는 새롭게 제작된 모랑 솔니에 L형 전투기를 몰고 출격했다.


이전처럼 정면을 안전지대로 여기고 공중전에 돌입한 독일의 전투기는 영문도 모른 체 집중 공격을 받고 격추되었다. 그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가로스는 3기의 적기를 격추시키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고 이를 기념해 프랑스군은 그에게 에이스라는 칭호를 내렸다. 다시 말해 그는 이후 공대공 전투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조종사에게 부여되는 에이스의 영예를 최초로 받은 인물이었다(※ 에이스의 기준이 학문적으로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5기 이상의 적기를 격추시킨 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4기를 격추시킨 가로스는 최초로 에이스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기준에는 1기 모자란다).




<롤랑 가로스 경기장에 설치된 동상. 전쟁 영웅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가로스는 이후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다가 탈출해서 다시 전선으로 달려갔고 종전 직전인 1918년 10월 5일, 30번째 생일 전날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설령 경기장이나 대회 명칭이 아니더라도 프랑스에서 이런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영웅에게 존중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상당히 자연스럽다. 이런 사례가 드문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몹시 부러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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