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블로그


항공우주선진국의 산업육성 사례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항공우주산업(Aerospace industry)은 산업발전의 가장 상위단계에 존재한다. 인류가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것은 겨우 20세기에 접어들어서였다. 혁명적인 물리학적 발견과 내연기관의 발전이 있었음에도 인류가 하늘을 날기까지는 수백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공기역학을 이해하게 되고 내연기관이 소형화되며 소재기술이나 정밀가공기술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부터야 비로소 동력비행의 세계가 인류에게 열렸다. 이후 정보통신기술과 신소재기술의 발달은 항공기를 더욱 빠르고 높이 그리고 안전하게 날 수 있는 커다란 견인차가 되었다. 이렇듯 항공우주산업이라는 것은 결국 고도의 과학기술력을 기반으로 모든 산업체계가 합쳐진 시스템 산업이다. 


또한 항공우주산업은 고도로 분업화된 전문가들에 의해 부가가치가 생산되며, 어떤 산업보다 조립의 소요가 높은 노동집약적 산업이기에 진입장벽도 높다. 항공우주산업의 시장구조는 자유경쟁의 일반시장과는 달리 생산자와 구매자가 모두 쌍방과점의 형태를 이룬다. 제 아무리 자본과 기술력이 있다고 해도 장기간의 거래실적이나 신뢰관계가 없이는 수주조차 어려울 정도로 시장진입 장벽도 높다. 이러다보니 이미 항공산업을 시작한 국가나 업체가 아니면 손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구도가 되어버린다. 우주산업으로 가면 진압장벽은 더욱 높다.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항공우주산업은 국가 전략사업이라고 일컫는다. 







든든한 소비층을 갖춘 미국 


항공우주산업의 최강국은 역시 미국이다. 보잉, 노드롭그루먼, 록히드 마틴 등 세계 항공계를 상용분야와 군사분야에서 좌지우지 하는 대기업들이 모두 미국에 몰려 있다. 그래서 전세계의 항공우주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무려 47%에 달한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내수만으로도 엄청난 항공우주시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 국방부와 NASA는 항공우주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고객이다. 이러한 고객들이 요구하는 제품들은 늘 새로운 도전이 된다. 충분한 예산을 앞에 걸고 높은 요구도를 갖춘 제품을 요구함에 따라 제작사들은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면서 스스로 성장해 나간다. 그야말로 항공우주산업의 생태계가 선순환되는 구조이다. 


산업계도 단단하다. 항공우주산업계의 종사자가 47만여 명에 이른다. 그러고도 인력이 부족하여 전문인력 양성과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풍부한 내수시장과 우수한 업체와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역시 항공산업의 생존을 위하여 활발한 M&A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파이를 키워가는 유럽 


유럽은 37%의 매출로 미국 다음으로 항공우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특히 유럽은 과거 프랑스의 다소(Dassault) ‧ 에어로스빠시알 ‧ 톰슨-CSF, 독일의 DASA(Deutsche Aerospace AG) ‧ 도니에르, 이탈리아의 핀메카니카(Finmeccnica) ‧ 아구스타(Agusta), 스페인의 CASA, 스웨덴의 사브(Saab AB), 영국의 BAE 시스템 등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회사들이 있었고, 냉전시기만 하더라도 나름 물량을 확보하면서 사업을 꾸려왔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각국의 국방예산이 급격히 삭감되면서 사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이합집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유럽연합이라는 초국가공동체가 탄생하면서 EU 내의 항공우주산업체들 사이에 대대적인 M&A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탈레스(Thales), 유로콥터, 유로젯, MBDA, EADS, 에어버스 등 초국가적인 EU 항공우주업체들이 등장했다. 이런 합자법인은 이제 에어버스 SE로 통합되면서 유럽 최강의 방산업체를 구성했다. 


사실 냉전시절에도 미국에 비해 물량이 적은 유럽은 토네이도나 재규어 같은 전투기를 만들면서 합자법인을 운용한 역사와 경험이 있다. 따라서 유럽 업체간의 통합은 크게 위화감이 없어보인다. 오히려 이런 M&A를 통하여 한 국가가 가졌던 항공우주산업능력을 다른 나라로 통폐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 생산시설을 놓고 그 활용을 극대화시켜나감으로써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영국의 BAE 시스템이나 스웨덴의 사브,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Leonardo S.p.A)처럼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지켜나가는 업체들도 있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는 러시아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미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던 항공우주강국이었다. 특히 스푸트닉 1호를 발사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의 발사에 성공했고, 보스토크 1호에 세계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태워 유인우주비행에 성공했다. 항공기로는 미그나 수호이에서 만든 전투기는 40년 이상 미국의 최첨단 전투기들과 호각세를 이뤄왔다. 


이러한 역량은 냉전 후 러시아에 그대로 보존됐다. 우선 오보론프롬을 통해 회전익과 미사일 등 영역을 통합했고, UAC(United Aircraft Corporations)에는 미코얀, 수호이, 일류신, 투폴레프, 베리예프 등을 모아 고정익기 통합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러시아 군 자체의 군비증강은 산업 전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비록 최근 항공전력의 세대교체를 추구하면서 Su-57 PAK FA와 같은 스텔스 전투기를 만들고 있지만, 산업계 전반을 부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구소련 시절부터 염가의 러시아 무기체계에 익숙한 제3세계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충실한 고객으로 남아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주로켓은 가성비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기술이전에도 너그러워 세계 각국의 고객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전세계 항공우주시장의 6%를 점유하고 있다. 




의외의 강자 캐나다 


캐나다는 CF-100과 같은 독자적인 제트전투기를 만드는 등 그 나름의 항공산업능력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CF-105 애로우 전투기의 개발이 취소되면서 항공산업 전반이 몰락하기에 이르러 전투기는 유럽과 미국에 의존해야만 했다. 반면 드해빌랜드 등의 업체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성격의 수송기와 민항기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그러나 1989년 캐나다 정부가 만년적자였던 국영 항공기업인 캐나데어를 민간으로 매각하고, 1992년 항공제작사들이 봄바디어로 단일화되면서 체질이 확 달라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4~5위권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행시뮬레이터, 리저널제트기와 비즈니스제트기, 창정비, 소형가스터빈엔진, 우주로봇 등 틈새시장 공략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세계 시장 점유율로 치면 5% 정도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무엇이든 먼저 베끼고 보는 중국 


최근 항공우주산업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사실 항공기술이랄 것이 없는 채로 소련에 의존했고 면허생산이나 모방생산이 전부였다. 그러나 덩샤오핑 시대에 수정사회주의를 채택하면서 개방이 일어나자 미국과 유럽업체와의 협력이 이뤄지면서 항공산업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국방예산도 늘어나 지난 20년간 국방예산의 증가율은 언제나 경제성장율보다도 높았다. 


특히 중국은 태평양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경쟁을 시작하면서 인민해방군 공군의 현대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자국산 전투기인 J-10이 양산되었으며, 미국의 스텔스기에 대항하기 위해 자국산 스텔스기인 J-20과 J-31을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전투기 뿐만 아니라 최신형 전략수송기 Y-20을 선보이는가 하면, 미국 무인기를 모방한 다양한 무인기들을 개발하였으며, 2023년까지 무인기를 4만대 넘게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생산능력도 남달라, 현재 중국의 항공기 생산능력은 미국과 유럽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본격적인 항공산업의 핵심역량 가운데 하나인 엔진 제작능력은 부족하여, 2016년 중국항공엔진그룹(Aeroengine Corporation of China, AECC)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은 일반산업에서 모방을 통해 기술력을 획득하듯, 미국, 유럽, 러시아 등 항공선진국의 기술을 도입하거나 모방하여 공격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제조 2025’ 전략에 따라 민수항공에서도 ARJ-20이나 C-919 등 자국산 항공기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래서 당장 중국을 항공우주선진국이라고 부르긴 어려울지 몰라도, 가장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철저한 치맛바람 속의 일본 


일본은 아무리 많은 비용이 소모되더라도 자국의 방위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로센’ 전투기를 내놓으면서 미 해군기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 신화의 이면엔 부족한 기술력으로 세계 최강인 미국에 덤벼 든 무모함이 숨어 있다. 결국은 기술과 숙련인력의 부족으로 일본은 전쟁 내내 군용기의 개발과 생산능력에서 한계를 보였다. 


그런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일본은 첨단 기술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거의 병적으로 국내생산에 집착하고 있다. 국내개발과 동시에 해외제품을 면허생산하더라도 F-4EJ의 경우 거의 99%의 국산화율을 보였다. F-15J의 면허생산에서는 75%까지 떨어졌지만, 애초에 F-15를 통째로 면허생산한 것도 일본뿐이다. 심지어는 F-35를 도입하면서도 모듈의 최종조립에 불과한 FACO(Final Assembly and Check-Out)를 굳이 일본 내에 설립하여 국내생산이라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국산화에 대한 시도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전후 YS-11 여객기를 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1970년대는 군용기 개발로 전환하여 재규어를 바탕으로 T-2 훈련기와 F-1 전투기를 만들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F-1의 후속으로 FSX사업을 추진했지만, 결국 미국에게 발목이 잡혀 F-2라는 어정쩡한 전투기를 만드는 데 끝났다. 2010년대에는 C-2 수송기와 P-1 해상초계기 등 국산모델을 선보였다. 그러나 세계가 전투기에 방점을 찍고 있을 때 민항기 개발에 주력하고, 민항기로 무게중심을 옮겼을 때 전투기 개발에 눈을 돌리는 등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반복하고 있다. 어쨌거나 철저한 보호 노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항공산업은 생생히 살아남았으며, 최근 보잉 787 여객기의 핵심부품을 공급하거나 미쓰비시에서는 MRJ를 개발하는 등 굵직한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의 함의 


우리는 아직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원대한 비전은 있으되 이를 실현시킬만한 구체적인(즉 예산이 뒷받침된) 정책안은 아직 없다. 1999년 민영 항공기제작사들을 모아 KAI를 만들었지만, 정부가 꾸준한 물량을 보장한다거나 미래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북한의 위협 등 안보적 필요에 따라 군에서 요구하는 초등훈련기, 고등훈련기, 지원전투기, 기동헬기, 군단급 무인기 등 다양한 품종에 대한 요구가 있으나, 수요가 그리 많은 편이라 할 수 없어 수익성도 높지 못하다. 결국 수출시장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산업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하겠다.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