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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늘에서도 싸우기 시작했다


필자 : 남도현 국방전문 칼럼니스트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가 12초 동안 36.5m를 날았다. 키티호크 해안가에서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저 새로운 구경거리가 등장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1976년 호기심 많은 몇몇 청년들이 집안 차고에서 만든 장난감 같은 애플이 모두가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를 연 초석이 된 것처럼, 플라이어 1호의 비행은 인류사를 바꾼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역사적인 플라이어 1호의 비행 모습. 인류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 순간이다 (출처:위키피디아)>


오늘날의 비행기는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이동 시 애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15세기에 콜럼버스는 대서양 횡단에 석 달이 걸렸지만 이제는 같은 거리를 6~7시간이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인류는 비행기로 많은 혜택을 누리지만 반대급부로 특정 지역에서만 발병하거나 외부로 퍼지는데 수십 년 이상 걸리기도 했던 질병이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유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초로 동력 비행체가 비행에 성공했을 때는 과연 이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아무도 몰랐다. 성공에 감격한 라이트 형제가 1년 후에 신문 기자들을 대거 초청해서 새로 제작한 플라이어 2호로 시범 비행에 나섰지만 실패했을 정도로 실제로 비행기로 사용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을 정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용할 수 없는 기술은 결국 사장 될 수밖에 없다.




<1794년 플로레스 전투에 등장한 정찰 기구를 묘사한 그림. 최초로 비행체를 전쟁에 사용한 사례다 (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대단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 본 이들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의 날개’에 관한 이야기처럼 인간은 하늘을 자유롭게 이동 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 우선 가장 큰 이점은 3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땅위나 바다 위로 갈 때보다 제약을 덜 받게 된다는 점이었다.

다음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교통, 통신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단지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 보고 판단을 내려야 했다. 높은 곳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욕심 많은 인간들은 이런 효과를 따질 때 어김없이 군사적 효용성도 함께 생각했다. 이미 1794년에 벌어진 플로레스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열기구를 정찰용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1907년 탄생한 미 육군 통신대 항공사단 소속 비행기와 기구 (출처:위키피디아)>



플라이어 1호의 성공이 있은 지 불과 4년 후인 1907년에 미 육군 통신대(Signal Corps)는 연락과 정찰 임무를 위해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 등을 기반으로 오늘날 미 공군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항공사단(Aeronautical Division)을 창설했다. 이처럼 비행기를 군사용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등장과 동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대부분의 열강들은 항공대를 운용했다.

이미 지상의 목표물을 폭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는 있었지만 성능이 부족해 이때까지는 아직 전투용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찰이나 연락 임무 도중에 적기와 마주쳤을 때 멀뚱멀뚱 상대를 바라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주먹감자를 날리는 것 이외에 하늘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늘에서의 싸움을 포기할 만큼 결코 인간은 착한 존재가 아니었다.




<최초로 공중전을 벌인 세르비아군의 미오드락 토미치(조종석) (출처:위키피디아)>



8월 15일, 비행에 나선 세르비아군의 토미치(Miodrag Tomić)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정찰기와 마주쳤다. 가까이 다가온 상대가 갑자기 권총으로 사격을 가해오자 토미치도 권총으로 응사하며 현장을 이탈했다. 인류 최초의 공중전은 이처럼 싱겁게 막을 내렸지만 이는 전쟁사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도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자 이제 모든 교전국들은 앞 다투어 비행기를 무장시키기 시작했다.

10월 5일, 프랑스군의 브와송 정찰기가 작전 도중 독일군의 아비아틱 정찰기와 조우했다. 이 둘은 즉각 선회에 들어가 총격을 개시했는데, 기관총을 탑재해 화력이 앞선 브와송은 소총으로 응사한 아비아틱을 격추시키는데 성공했다. 프랑스의 프란츠(Joseph Frantz)와 퀴놀(Louis Quenault)은 최초의 승자로, 독일의 잔겐(Fritz von Zangen)과 슐리슈팅(Wilhelm Schlichting)의 최초의 공중전 전사자로 기록되었다.




<공중전 최초의 승자인 조종사 조셉 프란츠(좌)와 후방 사수 루이 퀴놀 (출처:위키피디아)>



이듬해가 되자 전투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투기가 속속 등장하면서 치열한 공중전은 일상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된 것을 보면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복리를 증진해주는 분명한 요소다. 그러나 살상과 파괴의 도구인 무기처럼 굳이 발달할 필요가 없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비행기가 탄생한지 불과 10년 만에 이루어진 공중전은 의미 있는 기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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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동맹, 러시아의 적 '체코'

글_조문곤 항공전문기자

↑ 체코 항공력의 두 축 그리펜과 L-159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명제는 수천 년 동안 전쟁으로 점철되어 온 세계사가 피로 증명한 것이다. 체코 역시 이러한 명제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산 증인이다.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해 온 반 세기 동안의 냉전에서 동독, 폴란드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이 이끄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첨병 역할을 수행한 국가였다. 


동독에 이어 동구권 위성 국가 중 두 번째 규모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어 군사적으로 중무장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충분했다. 그에 맞게 나토(NATO)의 최대 위협이었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수만 대 전차에 대해 체코가 적지 않은 지분의 전력(장갑차 포함 5,000여 대)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냉전 대립의 최전선인 서독과 동시에 폴란드, 헝가리 등 주요 위성국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해체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다른 위성국과 연방국 대부분이 겪었던 것처럼 공산당 1당 독재체제의 사회주의 이념을 강요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계였던 체코와 헝가리계의 슬로바키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각자 역사적 정체성의 차이를 확인하고 체코 공화국(이하 체코)과 슬로바키아로 평화롭게 분리되었다. 


아울러 군사적으로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과 소련의 유산을 승계 받은 러시아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택하든지, 중립노선을 취해야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체코의 지정학적 위치는 미·러 어느 쪽에게도 전략적중요성이 컸으므로 중립노선은 논외였다. 마침내 1999년에 이르러 소련 시절 주요 위성국이었던 체코는 미국이 이끄는 군사동맹체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와는 군사적으로 적이 되었다(슬로바키아는 2004년 나토에 가입).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역사의 증언자가 된 셈이다.



↑ 냉전 시대의 체코슬로바키아 MiG-29를 가장 처음 도입한 위성국이었을 만큼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소련의 중요한 맹방이었다. 


  체코 항공력의 전환점이 된 MiG-29


오늘날 체코의 항공력은 과거 체코가 운용했던 MiG-29를 논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소련 시절 체코의 지정학적인 가치와 군사적 중요성은 당시 항공력의 핵심이었던 MiG-29의 운용사에서 잘 드러난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체코는 소비에트를 제외하고 연방 및 위성국 중 가장 먼저 MiG-29를 배치받은 국가였다. 1989년 4월 첫 MiG-29를 시작으로 동년 9월까지 18대의 단좌형 MiG-29와 복좌훈련형 MiG-29UB가 도입되어 2개 비행대를 갖췄다. 당시 군비 규모를 고려할 때 2개 비행대 규모는 대단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체코가 도입한 기체들 중 단좌형 6대는 전술핵무기 운용능력을 갖춘 1급 군사무기였을 정도였으니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소련의 군비 태세는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 체코와 슬로바키아 양국의 평화적 분리를 기념하기 위해 각국의 고장을 하고 기념비행을 실시하는 진귀한 사진. 양국은 분리되면서 군사자산을 2:1 비율로 나누었지만 당시 최신예 기체였던 MiG-29는 예외였다. 정확히 10대씩 반으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로 이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이와 함께 슬로바키아와 분리되는 과정에서 자산과 부채를 2:1 비율로 나누기로 합의하면서 군사자산이 30% 이상 줄어들었다. MiG-29는 가장 중요한 주력기였던 만큼 2:1이 아닌 1:1로 나누게 되었고, 이로써 절반인 10대를 슬로바키아에 내줘 체코에는 단좌형 9대와 복좌훈련형 1대 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 의거 핵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던 MiG-29 6대의 운용 장비 및 시스템이 철거되어 러시아로 회수되었다. 체코에서는 ‘겨우 10대의 MiG-29로 확고한 방공태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제기되면서 MiG-29가 국방 이슈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MiG-29를 퇴역시키거나 제3국에 판매하고 새로운 주력기를 새로 도입하든지, 혹은 당시 MiG-29가 배치된2015지 불과 5년 여 밖에 되지 않은 신형기체이므로 MiG-29를 미래의 체코 영공을 책임질 주력기로 재신임해서 점진적으로 추가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MiG-29를 계속 운용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1990년대를 관통한 경제난으로 국방예산 상황이 여의치 않던 상황에서 MiG-29의 운용비는 큰 걸림돌이었다. 체코의 항공자산은 대부분 러시아제인데, 러시아의 군수산업 인프라가 붕괴되면서 MiG-29를 비롯한 러시아제 기체들의 부품단가 및 군수지원 비용이 터무니없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비단 MiG-29의 문제가 아니라 체코의 항공력 전체의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MiG-29의 향방은 막 독립한 체코 항공력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었다.


↑ MiG-29 10대를 내주고 11대를 가져온 폴란드제 다목적헬기 W-3A. 산술적으로 W-3A 30대를 가져와야 적정한 거래였기 때문에 이 거래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군수산업이 와해되어 후속군수지원이 불투명한 당시 상황과 미국 및 나토 편입으로 대외노선을 정한 체코 입장에서 MiG-29는 사실상 쓸모없는 기체였다. 


대외적 여건 역시 MiG-29를 계속 안고 갈 수없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체코는 소련 해체 전인 1989~1990년 민주화 혁명이었던 벨벳 혁명 이후 대외노선을 이미 미국에 정조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1995년에 이르러 체코는 폴란드와 11대의 W-3 소콜(Sokol) 다목적 헬기와 10대의 MiG-29 맞교환에 합의했다. 사실 기체 가격을 따지면 체코 입장에서 손해가 막심한 거래였다. 때문에 이에 대해 국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체코는 자국의 러시아제 군용기들을 모조리 걷어내고 하루빨리 나토에 가입해 미국제 항공기들로 항공력의 새판을 짜려는 청사진에 사로잡혀 있었다. MiG-29는 체코 항공력의 전환점이자 소련 유산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출처: Flight Global World Air Force Data Base 2015


  체코 항공력의 새판 그리펜


MiG-29의 공백은 MiG-23 전폭기로 메워야 했지만 MiG-23 역시 1994년 상당수가 퇴역해버렸다. 체코는 일단 급한 대로 MiG-23 소수와 구닥다리인 MiG-21에 주력 방공전투기로서의 지위를 주고 나토 가입을 서두르는 한편, 나토와 완벽한 호환작전이 가능한 신형기 도입을 추진했다. 여러 도입기종을 저울질한 끝에 2002년에 이르러 도입 및 운용비용이 가장 저렴하면서도 나토와의 연합작전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스웨덴의 사브 그리펜을 10년간 임대형식으로 도입키로 결정했다.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 후 10년 간 청사진을 그려왔던 항공력의 새판을 짜는 순간이었다.


2005년부터 12대의 단좌형과 2대의 복좌훈련형 등 총 14대가 임대 도입되었으며, 1999년 체

코가 나토에 가입한 이래 나토 주관의 각종 훈련과 작전에 활발히 참가하고 있다. 한편, 임대가 만료되는 2015년이 임박해옴에 따라 체코는 2014년 5월 스웨덴 국방부와 그리펜 연장계약을 체결하고 2027년까지 계속 운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 체코는 제한된 국방비 상황에서 최소한의 영공방위에는 그리펜을 계속 임대해 투입하고 나머지 항공자산은 나토의 일원으로서 조화롭게 운용하는 것을 밑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서방제로 재편되는 과도기적 항공력 보유


내륙국가인 체코는 해군이 존재하지 않으며 육군과 공군으로만 편제된 체코군은 군무원을 포 함해 28,000여명 규모다. 공군 역시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 체코 공군은 2003년에 새로 창 설된 합동군 예하로 재편되면서 해체되었다가 2013년 7월 군 조직 전면 재편 계획에 의거 중 장이 지휘하는 총참모부 예하 독립 군종으로 다시 창설되었다. 


독립 군종으로서의 위상은 되찾았지만 참모총장격의 공군총사령관은 겨우 준 장계급(육군도 마찬가지다)에 그치고 있다. 4개의 공군기지와 1개의 미사일여단, 1개의 지휘통제 및 감시여단으로 구성된 공군 규모 자체가 작은 탓도 있지만 잦은 군조직 개편이 반복되면서 역사가 짧은 만큼 시행착오와 성장통이 적지 않은 모양새다. 


항공력은 공군에서만 운용되고 있으며 그리펜과 L-159, 그리고 Mi-24/35가 주요 핵심 전투 전력이다. 앞서 강조했듯 체코의 항공력 운용은 자국 영공방위를 기본으로 나토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브라질 엠브레어의 신형 수송기 KC-390 2대를 주문해 보다 폭넓은 지원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리펜의 공중작전 강화를 위해 2014년 나토 공중조기경보통제(NAEW&C)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NAEW&C는 각종 작전 및 훈련 간 나토가 보유한 E-3의 공중조기경보통제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체코는 이를 위해 연간 42억원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별도의 조기경보통제 플랫폼을 보유할 때 발생하는 비용 대비 너무나 저렴한 예산이어서 체코 같은 중소국가에게는 나토회원국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혜택이다. 체코가 독립 후 나토의 일원이 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은 나토회 원국으로서 NAEW&C 같은 안보혜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 체코의 주요 전투전력으로는 유일하게 운용 중인 Mi-24/35. 하지만 서방제 항공기로 개편 예정인 체코 공군에서 입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Mi-24는 단기간에 퇴역하고 비교적 최신형인 Mi-35는 조만간 제3국 중고판매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체코 항공력의 미래 L-159


얼핏 그리펜이 체코 항공력의 미래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펜은 나토군의 일원으로서 체코 항공력의 새판을 짜는 디딤돌에 불과하다. 바로 아에로 보도초디(Aero Vodochody, 이하 아에 로)의 존재 때문이다. 고등훈련기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T-50의 경쟁상대가 되는 L-159의 제작사인 아에로는 1919년 체코의 국영 항공기 기업으로 출발했다. 특히 냉전 시절 소련과 소련 연방 및 위성국들이 운용하는 고등훈련기의 주축이 되었던 L-39 4,000여 대를 제 작하면서 성장했다. L-159는 L-39를 베이스로 최대이륙중량을 4.7톤에서 8톤까지 끌어올려 경공격기로 변모시킨 기종이다. 당연히 운용 무기체계로는 미국 및 유럽제 나토표준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 


체코는 2000년 4월부터 L-159를 공군에 도입해 경공격기형 L-159A와 고등훈련기형 L-159T 를 운용하고 있다. 나토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이상 나토의 안보우산 아래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고가의 공중우세 전투기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자국 항공방위산업 발전과 인프라 유지, 그리고 수출을 통한 국부창출의 핵심 L-159는 여러모로 체코 항공력의 미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수출에도 힘쓰고 있다. 군용 훈련기로는 이라크에 15대를 수출했고, 미국의 민간 가상적기 업 체 드라켄 인터내셔널(Draken International)에 21대를 판매하기도 했다. 아직 수출실적은 그다 지 돋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국방예산 감축 추세와 고가의 고등훈련기 경쟁 기종들 사이에서 L-159의 높은 가격경쟁력은 중소국가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서 지속적 인 주목을 받을 것이다.


↑ L-159는 체코가 나토의 일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옛 소련 연방국 및 위성국이었으면서 나토에 가입한 중소국가들의 고등훈련기 및 경공격기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로맨틱 감성이 가득, 문화예술의 나라



정식 국가 명칭은 체코공화국이며, 체코어로는 체스카 레푸블리카라고 한다. 체코는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연방 해체로 분리 독립되었다. 국명은 고대 동유럽으로부터 이주하여 중부 보헤미아 지방에 정착한 ‘체코’족에서 유래하였다. 체코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과 국경이 맞닿고 있어 ‘유럽의 배꼽’이라고도 불린다. 


세계에서 면적 대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고, 사시사철 공연과 전시가 줄을 잇는 문화 예술의 나라로, 도로와 광장, 마을 사이의 좁다란 골목길마저 공들여 그린 수채화처럼 아름다워 관광객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유럽 역사와 중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곳, 연인들의 도시이자 맥주의 도시, 보헤미안의 도시인 체코는 상상 이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구시가지 광장 



체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구시가지 광장은 역사적으로 바츨라프 광장과 함께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치에 의한 체코 통치의 아픈 역사의 중심지이며, 사방이 아름다운 중세 건물양식으로 둘러싸여 볼거리가 가득하다.


  프라하 성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불리는 프라하 성은 9세기 경 처음 건립된 역사 깊은 유적지다. 카렐 4 세가 집권하던 14세기에 대대적으로 프라하 성공사가 이루어졌는데, 1541년 대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다시 개축되는 등 체코의 오랜 역사가 모두 담겨있다. 북쪽에는 사슴 계속, 남쪽엔 기암괴석이 둘러져 있어 천혜의 요새이며, 도시 어느 곳에서든 보일만큼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뾰족한 고딕 양식 건축물로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프라하 성은 삐죽 솟은 탑 중 가장 반짝이는 탑으로 14세기에는 ‘백탑의 도시’라 불렸다. 프라하 성은 성당을 중심으로 구왕궁, 화약탑, 왕실 정원, 여름궁전, 대통령궁 등 여러 건물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성만 둘러봐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블타바 강 


프라하 블타바 강은 아기자기한 동유럽의 낭만을 느끼게 한다. 전통 나무배를 타고 블타바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다 보면 프라하의 숨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강가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하얀 털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고니떼도 지척에서 만날 수 있다. 보트 투어는 ‘프라하의 베니스’라 불리는 캄파 섬과 카를교를 둘러보는 코스로 45분 정도 걸린다. 


  홀브카 성 


체코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성이다.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성으로 그 당시로서는 굉장히 모던한 양식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실내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성은 과거 승마학교였지만, 지금은 체코 최대의 미술관 중 하나인 갤러리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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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50 고등훈련기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위한 최적의 초음속 훈련기인 T-50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록 히드마틴사와 KAI의 공동개발로 탄생했다. 약 2조800억원의 개발비용으로 2001년 10월 시제 기를 출고하고, 2002년 8월 초도비행에 성공, 2003년 2월 초음속 돌파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12번째 초음속 항공기 개발생산국의 대열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는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하였다.


  최고의 성능, 최고의 멀티 롤 항공기


현재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훈련기로 실전 운용 되고 있는 T-50은 최고 속도 마하 1.5의 현존하는 유일한 초음속 훈련기로 고도의 기동성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급 훈련기 중 최고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 조종사 양성에 최적의 기종으로 손꼽히며 고등훈 련기, 전술입문기, 전투기 등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각종 무장 장착 시 경공격 등 다양한 임무수행이 가능한 유일한 기종으로 성능 대비 가격경쟁력, 운용 효율성 등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T-50 계열의 항공기로는 공중곡예를 위해 특수비행장비를 장착한 T-50B, 레이더와 공대공·공대지 미사일 등을 장착한 전술입문기 TA-50 등이 있다. TA-50을 본격적인 전투기로 개량, 발전시킨 항공기가 FA-50이다.



↑(왼쪽) T-50B 공중곡예기 (가운데) TA-50 전술입문기 (오른쪽)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


  세계를 향한 비상


일명 ‘검독수리, Golden Eagle’로도 명명되는 T-50은 우리나라를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국의 대열에 본격 진입시킨 주인공이다. 2011년 인도네시아 수출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2013년 이라크에 방산수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높였다. 이후 필리핀, 태국에 수출을 성공하면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미국 T-X 사업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기종 중 하나로 꼽히고 있어 향후 세계 고등훈련기 및 경공격기 시장에서 비약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 (좌측) 인도네시아 수출기 T-50i (우측) 이라크 수출기 T-50IQ


↑ (좌측) 필리핀 수출기 FA-50PH (우측) 태국 수출기 T-50TH


  최초로 컴퓨터 활용 개발에 성공


항공기는 시스템이 복잡하고 부품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제작에 들어가기 전 실물과 똑같은 목업(Mock-up)을 만들어 실제로 적용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작동해보는 과정을 거친다. 설계상 문제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T-50 개발 당시에는 목업 대신 대형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대형 모니터를 놓고 컴퓨터 목업을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전체 항공기 목업을 컴퓨터로 대신한 것은 T-50이 세계 최초였다. 도면도 종이 도면 대신 컴퓨터 도면을 활용해 일정을 단축할 수 있었다. 


항공기 중량 관리도 실제로 부품을 만드는 대신 수치를 컴퓨터에 입력해 컴퓨터상에서 중량을 체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발 빠르게 첨단 기술을 도입한 KAI의 뛰어난 판단력과 기술전략이 T-50 개발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이유다. 


30여 만 개의 부품과 15km에 이른 전선을 담고 있으며, 우리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T-50.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산현장과 공군기지에서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런 항공기로 성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우리의 자존심 T-50이 있기에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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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개국에서 380여개사의 업체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된 Seoul International Aerospace & Defense Exhibition (ADEX, 이하 서울에어쇼) 2015가 지난 10월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공항(성남)에서 개최됐다.


격년마다 개최되는 에어쇼는 그야말로 항공우주 및 방산 관련 업체들의 대축제다. 특히 이번 서울에어쇼는 4년 만에 성남에서 다시 개최되어 전시장 구경과 에어쇼 구경을 한 꺼번에 할 수 있었다. 롯데월드 타워 건설로 인해 성남기지 활주로는 방향을 트는 공사를 해야 했으므로 2013년 서울에어쇼는 전시는 일산 킨텍스에서, 에어쇼는 충북 청주공항에서 진행되는 이원화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자랑한 KAI는 으레 그렇듯 전시장 한 가운데를 FA-50 모형으로 중심을 잡고, 시뮬레이터로 관람객의 호기심을 끌었다. 이번 시뮬레이터는 T-50, T-X, HMD 3가지 종류나 됐다. 또한 협력업체들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만큼, 협력업체들의 전시품도 KAI 부스에서 볼 수 있었다.



↑↓ 서울 ADEX 2015에서 첫 선을 보인 T-X 시뮬레이터



↑ 서울 ADEX 2015, KAI 부스에서는 협력업체의 전시물도 함께 게시됐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 블랙이글스(T-50B)의 활약


누구나 에어쇼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이 상공을 가르는 비행기의 역동적인 움직임 아닐까. 심장을 울릴 정도로 큰 엔진소리를 느끼며 고개가 아프도록 높이 쳐들고 눈 앞에 펼쳐진 항공기의 재롱을 보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번 서울에어쇼에서는 세계 최강 전투기라고 불리는 F-22도 왔건만, 흐린 날씨 탓에 기동을 하지 않거나 절반만 하는 등 항공팬에 대한 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블랙이글스의 기동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 블랙이글스 기동사진 (출처: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이성일 과장)



  눈요기만해도 즐거웠던 야외전시장


에어쇼는 실내 전시장과 야외 전시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 야외 전시장을 가득 채운 항공기는 우리 공군의 전투력을 한 눈으로 보여주었을 뿐더러 그냥 멀리감치 서 있기만 해도 F-22 랩터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아파치에 실제 앉아서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는 등 볼거리가 꽤 많았다.




↑ (좌측) 실내 전시장 (우측) 야외 전시장


↑ 야외 전시장 끝자락에 자리를 차지한 수송기 A400M. 영화<미션임파서블-로그네이션>에서 배우 탐 크루즈가 매달렸던 항공기로 알려졌다.


↑ 한국 공군의 전투력을 보여주는 세션


↑ 주익 날개 공급을 KAI에서 하고 있는 폭격기 A-10


↑ 랩터 F-22


↑ 미군의 주력 공격헬기, 아파치 AH-64D


넓고 넓은 공항에서 펼쳐진 에어쇼를 이쪽저쪽 휘젓고 다니느라 고생스럽긴 했지만 당분간 기억에 남을 에어쇼가 될 것 같다. 내 후년에는 보다 맑은 날씨와 함께 많은 나라의 에어쇼를 구경했으면, 더욱 풍성한 볼거리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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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력 재건의 머나먼 길 필리핀 글_조문곤 항공전문 기자



  중앙아시아의 영구중립국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운수가 나쁜 사람은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옛 속담이다. 필리핀 항공력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속담 하나로 정리가 끝난다. 항공력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정치·경제와 궤를 같이 하게 되는데, 필리핀의 현대사가 갖가지 불운과 좌절을 반복하는 형태로 전개되면서 항공력 또한 성장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필리핀 경제를 일으켜 항공력이 강화될만하면 지도자가 갑자기 죽거나, 독재자가 나타나 나라를 망치거나, 재앙적인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올해 말부터 FA-50PH가 순차적으로 도입될 예정이지만 FA-50PH 도입 전까지 현재 필리핀이 보유한 기체들 중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량의 로켓포 몇 발을 겨우 탑재할 수 있는 10대 내외의 OV-10 전선통제기 뿐이다. 무려 9,500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의 항공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 미국의 경제원조와 각종 개혁정책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면서 한때 우리나라에게 경제원조를 해주던 필리핀과 필리핀의 항공력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990년대 초부터 중고로 도입된 OV-10은 올 연말 FA-50PH 도입 전까지 필리핀 공군을 지키는 유일한 고정익 전투전력이다. 


  너무도 짧았던 항공력 르네상스


1947년 7월 창설된 필리핀 공군은 창설 초기 10년간 대한민국 공군과 비슷한 전력으로 출발했다. 이 시기는 필리핀 항공력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국방장관 출신의 ‘라몬 막사이사이’가 1953년 대통령에 오르면서 각종 개혁암흑기정책과 부정부패 척결을 통해 정치는 물론 군사, 경제까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당시 필리핀은 6·25 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우리나라에게 결코 적지 않은 경제원조를 해줄 정도였다. 


국방장관 출신답게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군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50년대까지 F-51 머스탱을 주력 전투기로 운용하던 필리핀 공군은 1957년 F-86 50대와 F-86D 20대를 도입해 F-51을 대체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제트기 시대에 진입했다. 


1960년에는 아프리카 콩고에 UN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되어 첫 실전을 치를 정도였으니, 오늘날 필리핀의 항공력을 고려하면 당시 필리핀 공군은 그야말로 르네상스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재직 4년만인 1957년 막사이사이는 지역순방 후 마닐라로 돌아오던 중 전용기가 추락하면서 그의 주요 측근들과 함께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만다. 


나라를 훌륭히 이끌어 오던 지도자의 죽음에 필리핀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것이 진짜 비극의 시작에 불과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마르코스의 독재와 공군력의 암흑기


막사이사이 대통령 서거 이후 1965년 정권을 잡은 마르코스의 등장은 21년간의 지독한 독재와 극악무도한 부정부패 정권 출범의 서막이었다. 그동안 필리핀은 급격하게 붕괴된 경제, 이슬람 분리주의자 및 후크발라합 무장세력 창궐 등으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마르코스 독재정권 동안 필리핀 공군의 시계는 F-86 도입을 통해 제트기 시대로 진입했던 1950년대 말에서 멈춰버렸다. 


그 사이 아시아 각국은 1970~1980년대를 거치며 눈부신 항공기술 발달과 함께 첨단화된 공군으로 일신해간 반면, 필리핀 공군은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함께 철저히 망가져 갔다. 마르코스 정권은 실로 ‘필리핀의 잃어버린 20년’이었다. 


마르코스 정권에서 보강된 전력이라고는 1965년부터 미국으로부터 공여 받은 23대의 F-5A/B뿐이었다. 이밖에 1978년 25대의 미 해군의 중고 F-8H 크루세이더 전투기를 들여오긴 했지만 기체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도입예산으로 지불한 3,500만 달러는 사실상 바가지였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필리핀에게 3,500만 달러는 대단히 큰돈이었고 더욱이 F-8H는 당시 필리핀 공군의 기술적 수준 및 인프라, 예산규모로는 운용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유지비가 많이 드는 전투기였다. 결국 운용비와 부품수급 등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도입한지 불과 10년 만인 1988년 일선에서 도태되어 버렸다.


※ 출처: Flight global World Air Force Date Base 2015


  번번이 발목 잡힌 공군 현대화


필리핀의 국력을 갉아먹던 마르코스가 부정선거로 인해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1986년자진사퇴하면서 필리핀은 오랜 독재 뒤 갑작스런 권력공백으로 또 다시 수차례의 쿠데타와 내전 등을 겪으며 정권 안정화에 몸부림쳤다. 


정권찬탈과 이에 대항하는 무장세력들과의 내전으로 인해 필리핀 공군은 지상군의 게릴라전에 대한 항공지원에 중점을 둔 항공력을 구성해야 했다. 필연적으로 간소화된 형태를 바탕으로 지상군 지원에 적합한 기동헬기와 1991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중고로 도입한 24대의 저속 대지공격기 OV-10이 주력이 되었다. 때문에 공중전이나 본격 공대지임무를 수행할 플랫폼 획득은 예산순위에서 멀어져 제대로 현대화된 공군의 모습을 갖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1992년부터 정권을 잡은 국방장관 출신의 라모스 대통령이 1995년 2월 대통령령으로 ‘군현대화 법안’을 추진하면서 필리핀 공군의 현대화가 범정부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착수 됐다. 


공군력 현대화에서 가장 시급했던 것은 전투기의 확충이었다. 먼저 당장 수량이 부족한 기존 F-5A 전력을 확충하기 위해 1996년부터 대한 민국, 대만, 요르단으로부터 중고 F-5를 속속 인수했다. 이와 함께 F-5를 대체하기 위해 24대 규모로 신형기 도입을 추진하는데 후보 기종으로는 F/A-18C/D, 그리펜, 미라지 2000-5, 크 피르 2000, F-16C/D 등이 물망에 올랐다. 


필리핀은 후보 기종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마침 내 1996년 말 AIM-120 암람 미사일 운용이 가능했던 F/A-18C/D를 선정했다. 오랜 암흑기를 힘겹게 지나온 뒤 필리핀 공군이 현대화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중대한 이정표였다. 


그런데 1997년 IMF사태가 터졌다.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것이다. 신형전투기 도입사업은 백지화됐고, 한 줄기 희망을 목전에 두고 있던 필리핀 공군은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갑자기 필리핀을 덮친 금융위기는 신형전투기 도입의 백지화는 물론이고 기존 전력의 붕괴로 이어졌다. 공군예산의 급감으로 인해 기존 장비들의 현대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실력 있는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이 민간 항공사로 유출되는 현상이 극심해졌다. 때문에 그나마 남아있는 기체를 제대로 정비하고 유지하지 못해 기종을 불문하고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추락사고도 빈번해졌다. 특히나 유일한 전투전력이었던 F-5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1965년 미국으로부터 공여 받은 이래 세계 각국으로부터 중고기로 도입한 기체를 포함해 최대 37대까지 유지했었지만, 2000년대 들어 제대로 작전할 수 있는 기체 수는 불과 4대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운용비를 감당못해 2005년 결국 마지막 F-5A가 퇴역하면서 필리핀 공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IMF 사태로 F-5를 대체하기 위한 F/A-18 도입이 좌절되면서, F-5가 2005년 전량 퇴역하자 필리핀은 영공을 지킬 전투기 하나 존재하지 않는 치명적인 항공력 공백으로 이어졌다. 


  항공력 건설의 머나먼 길


필리핀은 3개의 항공사단과 그 예하에 2~3개 씩의 비행단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북부, 중부, 남부지역을 방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재난 때문에 공군은 주로 탐색구조, 구호 및 수송임무 등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평시 주된 훈련은 민간단체와 합동으로 실시하는 긴급 재난구호훈련으로 채워지고 있다. 사실상 공군이라기보다는 재난대책군과 같은 모양새다. 


더욱이 7,107개의 섬, 세계 해안선의 10.7%를 점유하고 있는 필리핀의 해양경계 소요는 그야 말로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군도로 이루어진 나라인 만큼 헬기와 수송기는 아무리 많이 보유 해도 부족할 지경일진대, 현재 필리핀 해군항공대 전력이나 수송기전력은 도무지 답이 없는 수 준이다. 


더욱이 필리핀은 남중국해의 스카보러 섬(중국명 황옌다오)과 스프래틀리 군도의 일부 섬에 대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 분쟁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허공 속에 외침일 뿐 이다. 중국의 강력한 군사력 확장으로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변변한 전투기 하나 없는 필리핀으로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주변국들과의 외교적 공조를 통해 도움을 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필리핀 해군은 2013~2014년 5대의 AW109 해상 작전헬기 도입을 결정해 올해 초까지 인수를 마쳤지만 성능을 고려할 때 상징적인 수준의 전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 FA-50PH 1호기는 2015년 6월 19일 첫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올해 말 2대가 인도되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12대가 필리핀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이러한 축면에서 필리핀의 FA-50PH 도입결정은 대단히 과감하고 통 큰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의 FA-50 도입계획은 2011년 6월 필리핀 공군 창설 64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볼테르 가즈민 국방장관이 경공격기급 전술입문기 도입을 천명하면서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FA-50 도입계획이 추진된 이래 대규모 자연재해 및 경제난으로 과연 도입이 성사될 수 있을 까 많은 의구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12대의 FA-50PH 도입을 끝내 이뤄낸 필리핀에게 FA-50PH는 단순한 전투기 도입이 아닌 필리핀 항공력 재건을 위한 강한 의지를 상징하는 기종이라 할 수 있다.



  필리핀, 동양의 진주, 아름다운 섬들의 향연



정식 국가 명칭은 필리핀 공화국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휴양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필리핀은 오랫동안 스페인(1571~1898)과 미국(1898~1942), 일본(1942~1945) 등 외세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식민통치 하에서 1946년 7월 4일 정식으로 독립을 맞았다. 


국토는 7,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섬은 이름 없는 암초이거나 산호초이고, 사람이 정착하고 있는 섬은 880개 정도이다. 그 가운데 루손섬과 민다나오섬이 가장 커서 국토 총 면적의 65%를 차지한다. 


그 밖의 주요 섬으로는 양대 섬 사이에 있는 비사얀 제도의 7개 섬(사마르, 파나이, 레이테, 세부, 보홀, 마스바테, 네그 로스) 및 민도로, 팔라완이 있다. 


지형은 필리핀의 최고봉인 아포산(2,954m)을 비롯하여 마욘, 탈 등 여러 개의 화산을 가진 산지와 미국의 2배가 넘는 복잡한 해안선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환태평양 화산대와 환태평양 지진대가 지나고 있기 때문에 화산이 많고 지진이 잦다. 


또 해안 지대에는 곳곳에 산호초가 발달해 있고, 태평양의 필리핀 해구(海溝)에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연(海淵)의 하나인 케이프존슨과 엠덴 해연이 있다. 


  필리핀 중심지 ‘마닐라’ 


루손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필리핀에서 가장 발전된 곳이다. 7,000여 개 섬들을 아우르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중심지로 각각 고유의 지방색을 경험할 수 있으며, 다채로운 문화도 엿볼 수 있다. 특히 마닐라는 필리핀 제도 각지의 수출용 농작물인 코코넛·마닐라삼·사탕수수·잎담배 등을 모아 정제·가공한 뒤 수출하는 가공업이 발달해 있어 최근 동부 교외에 새로운 공업 지대가 건설되고 있다. 


대표적인 여행지로는 따가이따이, 팍상한 폭포, 히든밸리, 마따붕가이 등이 있다. 


  꿈의 휴양지 ‘세부’ 


스페인의 첫 거주 지역이었던 세부는 다양한 문화와 혼합적 역사, 과거와 현대 문화가 공존해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과 명소를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부는 필리핀 남부 통상무역의 중심지이며, 국제화물 항구는 메트로 마닐라를 제외하면 가장 활발한 상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막탄과 반타얀, 카모데스 섬 외 16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에메랄드와 비취색이 섞인 환상의 바다 빛이 동화 속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다.


  보라카이 최고의 해변 ‘화이트 비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름다운 보라카이는 비사야 제도의 작은 섬으로 깨끗한 해변과 열대 야자나무, 다양한 해양스포츠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세계 3대 해변으로 불리는 화이트비치는 밀가루처럼 새하얀 산호모래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3~4km의 부드러운 백사장이 직선으로 쭉 뻗어있으며, 대표적인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는 만큼 호텔, 리조트, 레스토랑은 물론 야간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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